본문 바로가기

궁,,, 그 곳을 거닐다

[경복궁] 청명한 가을 하늘이 예쁜,,, 추석에 찾은 경복궁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경회루 2013

 

청명한 파란빛이 예쁜 가을날,,,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경회루,,,

 

 

조선시대의 경회루는 사면이 모두 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밖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었다고,,,

 

 

 

 

 

경복궁 경회루는,

 

 

 

 

경회루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신헌"이 쓴 것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그 외에도 과거시험, 활쏘기대회, 연회, 기우제등을 위한 국가행사장소로써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경회 (慶會)라는 이름은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난것을 의미한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 처음 지어진 경회루는 성종 때 고쳐지으면서

 

누각의 돌기둥을 화려하게 용의 문양을 조각하였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고종대에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높이를 3단으로 각각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참고로 우리나라의 단일 건물 중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은 "종묘 - 정전"이다.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경회루 연못은, 

 

물로 불을 제압해 궁궐을 보호하고

 

경복궁의 부족한 명당수를 확보하는가 하면 땅의 습기를 다스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불을 막고 비를 기다리는 의미에서 구리로 만든 용2마리를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1997년 11월 물을 빼고 청소를 하던 중 북쪽 못 바닥에서 동으로 만든 용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용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내용 출저 - 문화재청 >>

 

 

 

 

 

 

 

 

 

경복궁>> 조선 왕조의 법궁, 조선의 중심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한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왕자의 난 등이 일어나면서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는 등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지게 되는데 조선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지휘 아래 새로 지어진다.

 

경복궁 중건을 통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이곳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가게 되니,

 

단청의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빈집이 되어 버리는 비운을 겪는다.

 

 

 


일제 때 중앙청이라 불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원되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현재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복원 공사를 마치고 광복 65년을 맞은 2010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만난다.

 

2층 월대 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공식 행사나 조회 등에 사용한 건물이다.

 

근정전 월대 난간에는 주작, 백호, 현무, 청룡이 각 방위에 따라 새겨져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전, 왕비가 거처하였던 교태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나가면 연회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를 보게 된다.

 

인공 연못 위로 지어진 2층 누각 건물로,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에서 크기로도 또 아름답기로도 손에 꼽히는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교태전 아미산과 자경전 장생 굴뚝으로,

 

굴뚝 원래의 기능적인 역할에 더하여 여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미학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한 작품이다.

 

 

[출처 :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경복궁] 청명한 가을 하늘이 예쁜,,, 추석에 찾은 경복궁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경회루  201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