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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종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종묘에 가다 2013

 

 

 

종묘의 정문,,, 외대문.

 

 

 

 

종묘를 모두 돌아보고 나가려던 찰나,,,

 

 

 

즉석에서 친해진 아줌마를 만나 2시에 " 조선의 세자빈 - 혼례를 고하다"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행사까지 2시간 이상 남아 있었으나,

 

운 좋게도 종묘를 안내하시는 자원봉사자님을 만나

 

종묘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 분에게 들은 이야기와 종묘 안내책자등을 토대로

 

종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본다.

 

 

 

 

종묘는,,,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가운데 길은 "신로"라 하여~

 

조상의 혼령이 다니시는 길로

 

그 의미를 존중하여 보행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종묘에는 몇 몇개의 "못"이 있는데,

 

바깥쪽 사각형은 땅을,,,

 

가운데 원은 해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고 고궁과 다른 점은 못 가운데 섬에 심어진 나무가

 

고궁엔 대부분 소나무가 있으며,

 

종묘엔 향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망묘루"와 "향대청"

 

 

망묘루는 임금이 제사가 없는 날에 종묘를 찾으시면 머무르셨던 곳이고

 

향대청은 제사에 사용할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헌관(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재궁은,,,

 

 

어재실(御齋室) 또는 어숙실(御肅室)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제향(祭享)할 때 세자와 함께 머물면서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뜰을 중심으로 북쪽에 임금이 머물던 어재실이 있고,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으며,

 

서쪽에 임금이 목욕을 하던 어목욕청(御沐浴廳)이 있다. 임금은 제사를 올리기 3일 전부터 매일 목욕재계를 하고,

 

하루 전에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

 

제사 당일에 임금과 세자는 서문(西門)으로 나와서 각각 어로(御路)와 세자로(世子路)를 따라 정전의 동문(東門)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올릴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제사에 관한 일을 처리하던 전사관이 사용하던 방도 있었으며, 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도살하던 공간도 따로 있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배치되었고,

 

주실(主室)은 정면 7칸·측면 2칸 규모이며 좌우 행각에는 온돌방과 마루방을 들였다.

 

마당에는 제수를 장만할 때 사용하던 돌절구 같은 큼직한 돌이 4개 있다.

 

 

 

 

우물 "제정"은,,,

 

 

제수를 장만하는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있는 우물로,

 

원형으로 돌을 다듬어 만들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솟는 곳을 찾아 우물을 팠는데 물이 아주 차가웠다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막기 위해 사면에 담장을 둘렀고, 드나드는 문도 따로 설치하였다.

 

또 서쪽 담장 밑으로 배수구를 마련하여 항상 청결을 유지했다.

 

우물 남쪽에는 팔작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정전은,,,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었다.

 

종묘는 조선 역대 국왕과 그 비(妃)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이며,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정면 19칸, 측면 3칸, 맞베지붕, 일출목(一出目) 이익공(二翼工) 집이다.

 

1395년( 태조 4)에 준공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제1∼11실을 완공한 이래

 

1726년(영조 2)에 제12∼15실, 1836년(헌종 2)에 제16·17실,

 

그리고 1870년(고종 7)에 제18·19실을 이어서 증축하여,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이 되었다.

 

여기에 모신 신위는 제1실의 태조를 비롯하여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 고종, 순종 등 19왕과 그의 비인데,

 

이곳에 모시지 않은 왕의 신위는 이 건물 서쪽에 있는 영녕전(永寧殿:보물 821)에 봉안되어 있다.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

 

 

 

 

정전과 영년전은 한칸 한칸은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위의 모형은 "향대청"에서 만날 수 있다.)

 

노란색 커튼 뒤로는 하나하나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으로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단다.

 

 

 

 

 

제례에 사용된 음식은,,,

 

 

밥 4가지, 떡 6가지, 국과 고기 9가지, 과일 5가지, 포 2가지, 젓갈 4가지, 술 5가지를 올렸으며,

 

이 음식을 담는 그릇만도 63종에 달한다.

 

또 제례에 쓰는 그릇은 계절과 쓰임에 따라 그 모양이나 무늬가 각기 달랐으며, 모양과 무늬가 의미하는 바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영녕전,,,

 

 

세종(世宗) 3년(1421) 정종(定宗)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태실(太室)이 부족하므로

 

정전(正殿)에 대한 별묘(別廟)를 건립하여

 

태조(太祖)의 4대조를 함께 옮겨 모신 이후로도 정전에 계속 모시지 않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다.

 

 

 

 

현재 영녕전에는 중앙의 4실을 양 협실(夾室)보다 높게 꾸미고

 

각 실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셨으며,

 

서쪽 제5실에서부터는 정종(定宗)과 왕비, 문종(文宗)과 왕비, 단종(端宗)과 왕비, 덕종(德宗)과 왕비, 예종(睿宗)과 왕비,

 

인종(仁宗)과 왕비, 명종(明宗)과 왕비, 원종(元宗)과 왕비, 경종(景宗)과 왕비, 진종(眞宗)과 왕비, 장조(莊祖)와 왕비,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친왕)과 태자비 등 32위의 신주가 제16실에 이르기까지 모셔져 있다.

 

 

 

 

 

 

 

 

 

영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

 

 

종묘제례행사는 1년 단 한번 5월 첫째주 일요일~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종묘로 들어오는 행사가 있단다.

 

 

 

자원봉사자님 덕분에 종묘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추석을 지내고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오셨다는데,

 

입구에서 4명으로 시작했던 설명이

 

마칠 때는 30명 이상이 되어다며 매우 좋아하셨다.

 

 

 

 

그리고, 아침 10시 종묘제례악 공연에서부터

 

종묘를 나가기 전까지 함께 했던 왕언니(?)도 감사합니다.

 

 

이 분은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고~

 

또 헤어졌다가도 어디선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성함이라도 여쭤 볼껄 그랬다.

 

아쉽다...ㅡ,.ㅡ^

 

 

 

 

 

 

[종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종묘에 가다  201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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