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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설날 2017

 

 

아빠께 "창덕궁"에 다녀온다했더니,

희정당과 대조전을 자세히 보고 오라신다.

 

 

이유인 즉,

1917년 화재로 인해 1920년에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 창덕궁 희정당에

경복궁 교태전을 헐어 창덕궁 대조전에

,,,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강녕전과 희정당 / 교태전과 대조전이 비슷한 모양이라는데,,,

지도 로드뷰를 보니, 정말 많이 비슷하다.

 

 

역사의 내용에 이런게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경복궁도 꽃피는 봄이 오면~

 

강녕전과 교태전을 희정당과 대조전을 생각하며 꼼꼼히 비교해보고, 살펴보아야겠다.

 

 

 

 

 

 

 

 

 

 

 

 

 

 

 

 

 

 

 

왼쪽은 대조전~

오른쪽은 희정당~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숭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 장식을 하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총석정절경도,금강산 만물초승경도의 벽화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이 생겼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설비되었다.

이는 마차나 자동차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채택된 서양식 구조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인터넷을 찾다보니~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다가 이전 중건한 건물이나 강녕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요란하고 생경한 서양식 개조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라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화재에 대비한건지,,, 아니면 문화재 보호 차원인지,,,

앞으로는 들어가 볼 수 없는 "희정당"이 항상 아쉽다.

 

 

 

 

 

 

 

 

 

 

 

 

 

 

왕비가 주로 거처하는 건물,,, 대조전

 

대조전은 왕비가 생활하던 중궁전의 건물이다.

 

조선 태종5년(1405)에 처음 지었으나 그 후 여러차례 불에 탔다.

현재 이 건물은 1917년 불타서,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다시 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 침실은 왕과 왕비의 잠자리를 지키는 상궁의 작은 방들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정면 9칸, 측면 4칸, 단층 이익공 팔작지붕이다.

 

 

 

대조전엔 순정효황후가 사용하던 침대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날씨가 추운 겨울이라 문이 닫혀 있어 볼 수 없었다.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설날  2017.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