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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창덕궁 / 후원] 정조가 사랑한 후원, 왕의 걸음으로 걸어보자 # 부용지일원 # 애련지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설날 2017

 

3시.

창덕궁 후원 입장~!!

 

 

오늘, 후원의 마지막 입장이다.

 

 

설날이라 창덕궁은 무료이지만,

후원 입장료는 5000원.

 

사실, 서울 시내의 고궁 입장료를 생각하면 5000원은 좀 비싼 듯하지만,

"창덕궁 / 후원"은 그 만큼 값어치를 하는 것 같다.

 

 

 

한겨울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보통은 꽃피는 4월이나 단풍드는 11월에 많이 찾았던 후원이고,

겨울엔 처음(?) 와 보는 것이라 생각보다는 좋았다.

 

 

 

후원은 4월 첫째 주와 11월 첫째 주가 가장 아름답다.

 

예전엔 그다지 경쟁이 없어 여유롭게 예약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 인기가 하늘을 찔러 ㅡㅡ;; 광클릭을 하지 않는다면 기간을 놓치기 일쑤;;;

 

올해도 광클릭의 승자가 되어보기를 기대한다.

 

 

입구에서 해설아저씨의 이야기가 참 인상깊다.

 

보통은 여자분들 해설을 하던데,,,

남자분은 처음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인상 깊었던,,,

 

"제 설명도 좋지만, 후원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왕이 된 기분으로 후원을 걸어보고,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친절한 해설은 있었지만,

난 그 분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물론~ 역사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그 장소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감정도 중요하기에~

  

두 가지가 적당히 섞이면 더 좋겠지???

 

 

그래도 난~ 왕이 된 기분으로 걸어본다 :)

 

특히 창덕궁과 후원은 "정조"가 유독 사랑한 곳이라 하니,,,

정조의 걸음으로 사뿐히 :)

 

부용지 일원,,,

 

몇 일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 남아 있는 곳도 있어~

겨울풍경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올해는 이것으로 눈은 끝인가보다.

제주엔 벌써 봄꽃이 모두 피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쉬운 겨울이다.

 

 

그리고 요 몇 일 내린 눈으로 후원의 관람 동선이 짧다.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많은 후원의 지형 특성상~

안전을 위해 단축 시켰단다.

 

"옥류천 일원"은 가지 못했다.

 

그래서 보통은 1시간 40분 이상 걸리는 후원투어가

1시간 10분 정도로 단축됐다.

 

 

 

주합루, 서향각, 어수문,,, 

 

 

 

 

 

부용정,,,

 

 

 

창덕궁에서 후원으로 가는 길은 현재는 내의원으로 불리는 건물군을 왼쪽으로 끼고 담으로 좌우를 막은 통로를 이용하게 된다.

이 통로는 약간 오르막길로 되어 있으며 길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내리막길로 변하는데

그 지점에서 부용지 일대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3면이 경사지이며 경사가 모이는 한가운데에 방형(方形)의 연못인 부용지가 있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는데,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이다.

동서 길이가 34.5m,남북 길이가 29.4m에 이르는 방형의 연못이다.

 



부용지의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연못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렸고, 남쪽 모서리에는 물고기 조각이 하나 있다.

잉어 한마리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새겼는데, 이것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빗댄 것이다.

 



이 연못의 남쪽 변에 부용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부용정의 남쪽은 낮은 언덕에 면하고 있다.

현판이 걸려 있는 동쪽이 건물의 정면인데, 이는 이곳의 지형이 남·북·서 삼면이 낮은 언덕으로 둘려있고,

동쪽만이 훤하게 트여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변을 보면 남쪽 언덕에는 3단의 화계(花階)를 설치하고 꽃을 심고 수석을 배치하여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북쪽 연못에는 가운데에 섬 하나를 쌓고 그 뒤로 높은 언덕에 어수문(魚水門)과 주합루(宙合樓)일곽이 보이도록 하였다.

 



주합루의 왼쪽으로는 서향각(書香閣)이 있으며

주합루의 뒤 2단의 석대 위에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라는 편액의 작은 건물이 있다.

서향각의 뒤 높은 곳에 희우정이 있다. 연못의 서측에는 서정기비각(西井記碑閣)이 있다.

 



부용정은 궁궐지에 따르면 조선 숙종 33년(1707)에 이곳에 택수재(澤水齋)를 지었는데,

정조 때에 이를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芙蓉亭)’이라 바꾸었다고 한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주합루 남쪽 연못가에 있다.

 

연못 안에 채색하고 비단 돛을 단 배가 있어,

정조 임금께서 꽃을 감상하고 고기를 낚던 곳이다”라고 하여

이곳에서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축하해 주기도 했으며,

신하들과 어울려 꽃을 즐기고 시를 읊기도 하였는데,

1795년 수원 화성을 다녀온 정조가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고 전한다.

 

기둥에는 이곳의 풍광을 읊은 시를 적은 주련(柱聯)10개가 걸려 있다.

 



부용정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누각으로

연못 남쪽 위에서 봤을 때 열 십(十)자 모양을 기본으로 구성되었으며, 남동과 남서쪽에 반칸을 덧대서 소통을 원활히 하였다.

 남북 중심축을 기준으로 할 때 동쪽과 서쪽이 좌우대칭이다.

연못 안에 2개의 팔각 석주를 세운 다음 그 위에 가느다란 원기둥을 세우고 건물의 비례에 맞게

앙증맞은 2익공(二翼工)공포를 짜 올렸다.

 

정자안은 네 개의 방을 배치했는데, 배면의 방이 다른 방들보다 한 단계 높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이다.

외관을 보면 북쪽은 간결하고 남쪽은 화려한 형식을 취하고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며,

풍부한 형태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난간과 창호도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난간은 평난간과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었는데,

특히 북쪽 연못 부분의 난간은 다른 곳보다 한단 높게 하여 변화를 주었다.



창호를 보면 외부 창은 연못으로 내민 부분에만 亞자살문을 달고,

그 밖의 다른 곳은 모두 띠살문 으로 하였으며, 들쇠에 매달면 사방으로 트이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부에는 정자살문과 팔각형 교살창을 낸 불발기창을 두어 안팎 공간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였다.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 초입에 천원지방의 조형원리에 따라 조성한 대표적 연못인 부용지에 지은 마루식 정자로

연못에 인접하여 자연의 선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풍류를 통해 수양을 하는 한국 정자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다.


열십(十)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 형태, 공간구성, 건물의 장식 등이 뛰어난 비례와

대비로 건물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출처 : 문화재청)

 

 

 

 

 

 

이 곳에서 가장 재밌는 곳이 바로 부용지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그져 상상 만으로도 웃긴 일화,,,

실제로는 웃기지 않았을테지만 ㅡㅡ;;

 

 

정조는 주합루에 관료들을 불러 시를 짓게하고, 평가를 하였는데~

재미로 잘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부용지 연못 한 가운데 있는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하하하,,, 너무 귀여우신 것 아닌지;;;

 

 어수문과 주합루,,,

 

 

 

창덕궁 주합루(昌德宮宙合樓)는 정조 즉위년(1776) 창덕궁 후원에

어제·어필을 보관할 목적으로 건립한 2층 건물이다.

기단은 네벌대의 장대석을 바른층 쌓기하고 맨 위의 갑석에는 쇠시리를 넣어 마무리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건물로 기둥은 모두 상하층 통주로 사용하였고,

사방을 외부 기둥에서 1칸씩 물려서 퇴를 두었으며,

 내부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하였다.

 

공포는 궁궐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이익공으로 주두와 익공살미, 행공이 짜여지고 그 위에 재주두가 놓이며

 운공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양성바름으로 마감하였고

용마루 끝에는 취두를, 내림마루에는 용두를, 추녀마루에는 잡상과 용두를 얹어 권위가 높은 건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정조의 정책개발과 개혁정치, 조선 중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과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며,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 어진, 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건물은 경사진 높은 지형에 배치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1층은 왕실도서 보관에 적절한 퇴와 사분합 들문을 설치하였고 내부는 온돌을 두었다.

2층 열람실은 사방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등 건물의 기능에 맞는 실 배분이 충실히 반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누구의 발자국일까???

 

 

 

 영화당,,,

 

 

 

 

 

 

 

 애련지와 애련정,,,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인 애련지()는 창덕궁 불로문()을 지나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애련지 북쪽에 서 있는 간결한 정자가 애련정()이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한데,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는 연못 옆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애련정은 숙종 18년(1692)에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의 사모지붕 양식을 띠고 있다.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 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렀는데, 낙양창 사이로 사계절이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이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가 '궁궐지()’에 전한다.

 

 

(충처 : 두산백과) 

 

 애련정,,,

숙종은 누구를 생각하며 애련정을 만들었을까???

 

 

해설사분께서 여운을 남기셨다.

상상은 여러분의 몫이라며,,,

 

 

 

 

 

 

 

 

[창덕궁 / 후원] 후원,,, 왕의 걸음으로 걸어보자 # 부용지일원 # 애련지 # 설날  2017.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