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궁,,, 그 곳을 거닐다

[창덕궁] 창덕궁의 봄 - 돈화문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

창덕궁 가는 날,,,

 

쌀쌀하던 날씨가 갑자기 확~ 뒤집어졌다.

28도의 한여름 날씨다.

시내엔 민소매에 핫벤츠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봄의 실종인가,,,??

아직 봄옷 다운 옷 한번 입어보지 못했건만,,,

 

난,,,봄 옷이기는 하지만 "스웨터"다.

으~ 덥다.



열흘 전 즈음,

달력을 보면서 고민했다.

도대체 요즘 날씨를 알 수 없는지라,,,

그러나, 이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바로 지금이 좋은 때다!!"

 

창덕궁 오랜만이다.

 

작년 이만 때 즈음 왔고,

그 해 가을, 후원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보고 싶어 예약을 해 두었었는데

어째어째 하다 가지 못했다.

창덕궁 여행은 "돈화문"에서 부터 시작된다.

 

 

돈화문은,,,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인 1412년 5월에 건립하였으며 창덕궁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다음해 돈화문에 큰 종()이 설치되어 매일 정오와 오후 10시에 종을 쳐 시각을 알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선조() 재위 40년인 1607년에 복원이 시작되어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완공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돈화문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집이다.

중앙의 3칸은 가운데 주열()에 각각 2짝씩 문짝을 달았으나

좌우 맨 끝의 칸과 측면 앞의 절반은 모두 벽을 쳐서 막았다.

 

위층은 누마루를 깔고, 4면에 작은 판문()을 돌려 달았으며,

고주()는 좌우 2개만 있고 가운데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다른 문루건축()은 고주를 가운데에 한 줄로 배치하는 일이 보통이지만,

이 돈화문은 그 일부를 생략하여 넓은 공간을 활용하도록 새로운 의도를 나타내었다.

 

공포(栱)는 상하층이 모두 내삼출목() ·외이출목()의 다포집 계통의 것으로

쇠서[]들의 형태는 아직도 건실한 기풍을 지녔다.

 

그러나 내부의 살미첨차들은 이미 적지 않게 장식적 요소가 나타나 변형되었다.

한때 돈화문은 창경궁()의 명정전(殿) 등과 함께

임진왜란의 병화()를 면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명정전은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건물임이 밝혀졌고

돈화문도 그 세부적인 수법을 서로 비교해 보면 임진왜란 이후의 건축임을 알 수 있다.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엔 창덕궁 일원과 후원 특별관람까지 예약을 해 놓은 것이라

노선이 뒤죽박죽이랄까,,,?? ^ㅡ^;;

 

사진도 분위기 좋은 곳이라 생각들면 찍었고~

그리하여, 정리도 내가 걸어간 흔적 순서데로 포스팅 하려한다.

 

"창덕궁 + 후원 + 창경궁"

,,,에서의 내가 지나간 흔적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돈화문 - 진선문 - 인정문 / 인정전 - 선정문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일원

- 후원특별관람 (13시) - 부용지와 주합루 - 애련지와 의두합 - 연경당 - 존덕정 - 옥류천 일원

- 궐내각사 - 구 선원전 일원 - 함양문 - 창경궁

 

창경궁은 단지 버스를 이용해 지하철을 쉽게 타려는 목적이 약간 가미되어

잠시 동안만 머물렀고,

낙선재(창덕궁)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ㅡ,.ㅡ^

 

다음 방문엔 "낙선재"를 향해 쭉~ 걸어가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창경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있는 것 같던데,,,

그 부분 역시!!

한번에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욕심으로,,,^ㅡ^;;

이런일이 생기는가 싶다.

 

 

창덕궁은,,,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의 향교동()에 이궁()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殿선정전(殿)·소덕전(殿)·빈경당(

여일전(殿)·정월전(殿)·옥화당()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지나간 꽃도 있고, 아직 한창인 봄꽃도 있다.

창덕궁의 봄은 화려했다.









 

창덕궁의 봄 [돈화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