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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창덕궁] 설날에 찾은 창덕궁 # 성정각 # 낙선재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7

 

3시의 후원 관람으로 인해~

창덕궁을 모두 둘러보지 못했다.

 

 

"성정각과 낙선재"를 마져 둘러보기 위해

후원 관람을 마치고 일행들을 따라 가지 않고~

들어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 나왔다.

 

 

성정각과 관물헌,,,

 

 

 

난~ 각 고궁마다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건물들이 하나씩 있다.

 

예를 들면,,, 덕수궁은 석어당

경복궁은 향원정

창경궁은 통명전

그리고~ 창덕궁은 성정각 :)

 

관물헌,,,

 

 

 

성정각() 북쪽 희정당()과 중희당() 사이에 있다.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 개화당은

고종에게 난을 피하라고 강요하여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이어()하게 한 다음,

다시 이재원()의 사저인 계동궁()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국왕과 왕비의 강력한 요구로 환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창덕궁 중에서도 가장 협소한 관물헌으로 국왕을 이어하게 하였고, 이곳을 그들의 작전본부로 삼았다.

개화당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소수의 병력으로도 청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청의 위안스카이[]는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궁중으로 들어가,

12월 6일 오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 일대에서 호위 중인 일병과 싸워 물리치고,

관물헌에 있던 고종은 김옥균 등의 만류를 뿌리치고 민비가 있는 북관왕묘()로 돌아갔다.

이로써 개화당의 집권은 이른바 ‘삼일천하’가 되었고,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공사 일행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조선시대 세자가 거주했던 동궁()에 속한 전각으로 세자가 학문을 연마했던 곳,,, 성정각

 

 

 

창덕궁 희정당() 동쪽에 위치한다.

성정()이라는 명칭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에 나오는 성의()와 정심()이라는 말에서 따왔으며

학문을 대하는 정성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

성정각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정조()의 어필이라고 전해진다. 

 

 

성정각의 대문은 높은 솟을 대문이며 영현문()이라고 이름지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오른쪽에 누마루가 있는데 남쪽에는 보춘정()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동쪽으로는 희우루()라고 현판을 달았다.

 

 

한때는 이곳을 내의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우측 맞배지붕의 4칸짜리 전각에는 내의원이었음을 알리는 보호성궁(), 조화어약(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나타나는,,, 낙선재로 향한다.

최근까지 마지막 왕족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2012년 보물 제 1764호로 지정되었다.

 

 

 

 

 

 

 

1년 전 즈음~ 일반에 개방된 "낙선재 후원"

 

 

사실, 첫 발걸음을 디뎠을 때~

너무 큰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덜 화려한 탓인지,,,

실망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ㅡㅡ;;;

 

아직 겨울이라 사진은 이러하지만,,,

 

봄 사진을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보면 정말 화려하지만,

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함정이 있다 ㅡㅡ;;;

 

 

 

창덕궁의 봄꽃은 낙선재에 들어가지 않고, 그 앞쪽의 뜰(?)이 참 화려하다.

매화, 앵두~ 등등~ 다양한 꽃이 만개한다.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

 

한옥의 구조,,, 여름에 참 시원하겠다.

 

 

 

 

 

 

 

 

 

넓디 넓은 낙선재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창덕궁을 나선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 듯~

되돌아 나가는 길은 아쉽다.

 

그냥 이유없이,,,

 

 

 

함께 온 라현이와 라동이를 찍어주기 위해~

"재실"로 들어왔다 :)

 

어멋??? 구멍 사이로~

 

 

 

그렇게~ 설날에 만난 "창덕궁"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의 자랑스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창덕궁] 설날에 찾은 창덕궁 # 성정각 # 낙선재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7.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