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한창이었던 때인지라,,,
전시실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시내에 사람들이 없어 깜짝 놀랐는데,,,
새해가 되니, 사람들이 많다. ㅡㅡ;;
무슨 논리인진 모르겠다;;
안데르센의 침대,,,
안데르센이 코끼리라 불렀다는 여행가방,,,
가방이 참 마음에 들고 탐이 난다 :)
안데르센의 멋지게 낡은 가방을 보고 있으니,
엄마생각이 났다.
우리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말씀하는 것들 중 한가지가 있다.
"난 다시 태어나면 베토벤 (악보가 든) 가방들이 하고 싶어"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엄마의 명언:)
그럼 난 쇼팽 가방들이 해야겠다~ :)
안데르센은 늘 종이와 함께였다고 한다.
그는 종이 위에 쓰고, 종이 위에 그리고, 종이 오리기를 좋아했단다.
안데르센 전시회를 보고 있으니,
내 어린시절도 돌아보게 된다.
난 항상 테이프와 함께였는데,,,
별명이 테이프 귀신 :)
종이로 만들고, 테이프로 붙이고, 그리고, 또 테이프로 붙이고,,,
다양한 안데르센의 종이 오리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안데르센의 그림들,,,
안데르센의 첫 번째 동화 원본과 최초 한국어로 번역된 안데르센 동화책,,,
요 작은 책이 "안데르센의 첫 번째 동화 원본"이다.
그리고 안데르센의 의자,,,
이 역시 탐난다.
요즘 최신식 유행 가구라해도 될 것 같다 :)
사람이 보이는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구두 수선공 한스 안데르센과 세탁부 안네 마리 안데르스다테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가족은 매우 가난한 최하층 계층이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열 한살 때, 아버지가 서른 셋의 나이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고,
안데르센은 경건하면서도 미신을 믿는 민속 문화의 영행을 받으며 성장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놀기를 좋아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마음 속으로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오덴세에 있던 극단으로부터 강한 영행을 받은 안데르센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코펜하겐의 왕립 극단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로 결정하고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안데르센은 시인이 되고 싶어했고,
어느 점쟁이는 안데르센이 유명해져서 오덴세에서 명예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서른 살이 된 안데르센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이자 자신의 첫 번째 동화인
"아이들을 윈한 동화"를 출간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안데르센은 안정된 가정을 꾸려 정착하는 삶 보다는
세계 각지로 여행 다니기를 즐겼으며,
유럽 과학과 예술 뿐만 아니라
왕실의 명사들과 같은 지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사망 직전 그는 영국으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로 칭송 받았다.
1875년 8월 4일 사망하였고, 그의 장례식은 국제적인 행사로 거행됐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문화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덴마크의 문학적 문체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언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 안데르센展, 팜플렛 참조)
[서울역사박물관 / 안데르센展] 안데르센 이야기 - 안데르센 전시회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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