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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덕수궁 - 중명전] 정동길,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 덕수궁 중명전 -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2013

 

정동길엔 역사적인 건물이 참 많다.

 

우연치 않게 만난 "중명전",,, 반가우면서도 쓸쓸했던 그 곳.

 

 

 

 

대한제국이 원하지 않았던 을사늑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되었고,

 

예전엔 덕수궁(경운궁)과 궁궐터가 통합이었는데

 

지금은 건물들이 생기고 소실되어 덕수궁(경운궁) 일원이 아닌 듯 섬처럼 떨어져 있다.

 

그나마 2007년에 덕수궁(경운궁)에 편입됐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마음이 더 쓸쓸하고 아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7시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정동극장을 지나다 우연히 표지판을 보고 찾게 된 중명전,,,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선 중명전,,,

 

나에게 가장 먼져 눈에 띈 샹드리에가 아름답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하면 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단다.

 

 

 

 

 

 

 

 

 

중명전 안내책자를 보고 깜짝 놀란 덕수궁의 영역 변천모습,,,

 

 

 

붉은 부분이 현재의 덕수궁 영역이고,

 

갈색 부분이 1910년 덕수궁 영역이다.

 

 

 

 

중명전 연혁을 보면~

 

수많은 풍파가 있었음이 보여진다.

 

 

 

을사늑약 강제도 화나지만,

 

1915년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쓰인 부분도 참,,, 그렇다. ㅠ,.ㅠ

 

 

 

 

 

 

아래는 "중명전" 안내책자와 그 곳에서 내가 촬영해 온 사진을 차례데로 나열해 보았다.

 

 

 

 

 

 

 

 

 

 

 

 

 

 

 

 

 

 

 

 

 

 

 

 

 

 

 

 

 

 

 

 

 

 

중명전의 전시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을사늑약"이다.

 

 

 

 

이 조약의 체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05년 11월 17일 밤,

 

일제는 덕수궁 안팎에 무장한 일본군을 배치하고

 

당시 고종이 기거하고 있던 중명전에서 고종과 대신들에게 보호조약에 조인할 것을 강요했다.

 

이날 일본공사 하야시가 이미 일본대사관으로 대신들을 불러 협약 체결을 종용하였으나

 

오후가 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하자 덕수궁에서 어전회의를 열었다.

공포 분위기 속에 열린 어전회의에서도 고종과 대신들이 조인을 거부하였고, 이토 히로부미는 세 번에 걸쳐 고종을 협박하였다.

 

고종이 끝내 거부하자 이토는 찬성하는 대신들(을사오적)만 데리고 11월 18일 새벽에 조약을 체결하였다.

 

고종은 이 문서에 서명이나 옥새를 찍지 아니함으로써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정동길도 한바퀴 돌아보며, 문화재도 찾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정동극장 뒷편으로 위치한다.

 

시립미술관쪽으로 걸어갔다면 정동극장 건물 끝 즈음에 표지판이 있다.

 

 

 

 

 

[덕수궁 - 중명전] 정동길,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 덕수궁 중명전 -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201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