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은 살아있다"
착찹하고, 답답하다.
5대 궁궐 중의 하나,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이 곳이 과연 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라(?)하다.
그 옛날 웅장하고 넓었던 "경희궁"의 모습을 특별전으로나마 만나본다.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은 살아있다,,, 전시회는
2016년 3월 13일까지이며,
입장료는 무료이고,
월요일은 박물관 휴관일이다.
경희궁은 서울의 5대 고궁 중 하나다.
그럼에도 원래의 모습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복궁, 덕수궁에 비하면 위치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만큼 경희궁은 관심 밖이었다.
경희궁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집터에 왕의 기운이 있다는 이유로 광해군이 몰수해 1623년(광해군 15)에 완공됐다.
정원군의 장남인 인조가 왕위에 올랐으니, 왕기가 있다는 전설이 들어맞은 셈이다. 이곳은 인조 이후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궁궐로 영화를 누렸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엔 경덕궁으로 불렀으나, 1760년(영조 36)에 ‘기쁨이 넘치고(慶) 빛난다(熙)’며 경희궁이라고 개칭했다. 특히 영조의 경희궁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비운의 궁으로 전락했다.
1865년 고종 대에 경복궁 중건 때 대부분 헐려 건축 자재로 활용됐다.
게다가 국운을 없앤다는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1910년엔 일본인 관료 자녀들의 학교인 경성중이 들어섰고 총독부 관사로도 이용됐다.
특히, 정문인 흥화문은 일제가 1932년 남산 자락에 만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추모 사찰인 박문사(博文寺) 절문으로 썼다.
광복 후 신라호텔로 바뀌면서 호텔 정문으로 이용되다 1994년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어전회의가 열렸던 숭정전은 일제가 조계사에 팔아 옮겨졌다가 지금은 동국대 정각원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는 또 왕의 침전인 회상전을 부수고 지하벙커를 만들었으나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 창고로 쓰고 있다.
광복 후 서울고가 1946년 개교돼 학교 건물로 사용하다 1980년 서울 서초동으로 이전하자 서울시가 이 터의 일부를 매입해 공원을 조성하면서 부분 복원됐다.
그러나 예산부족으로 복원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경희궁 안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내년 3월 13일까지 경희궁의 옛 모습과 변화상을 담은 ‘경희궁은 살아 있다’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경희궁이 새삼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조선 정치의 1번지였던 경희궁의 복원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경복궁 등 다른 고궁들처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름 그대로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출처 : 문화일보 / 박현수 조사팀장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122301073836170001)
1623년,,, 이렇게 넓었던 경희궁이~
2016년 현재,,,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ㅡㅡ^ 남아있다.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이라 칭하고~
영조가 각별히 사랑했다는 경희궁,,,
하지만,
그 후로 비운의 궁으로의 역사는 계속 되고,,,
위의 문화일보사에 올라 온 글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고, 눈물이 글썽여진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힘이 없는건지,,,
경희궁 특별전을 관람 후,,,
서울역사박물관엔 볼거리가 너무 많아~
보고ㅡ 생각하고ㅡ 느끼고ㅡ 사진도 찍으려면 온 종일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고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
안데르센전과 경희궁은 살아있다전을 보고~
화장실 들렀다가 박물관을 나갈려고 길을 찾다가
빼꼼~ 보인 곳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안으로도 너무나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1990년대 방문화 전시랑~
그 시절 한창 오락실에서 유행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3판만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ㅡㅡ^
90년대면,,,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모두 있는 ^ㅡ^;;
2~3년 전까지 가지고 있던 CD플레이어를 버렸다.
자체 충전기를 충전해서 사용하는 방식의 CD플레이어 였는데~
MP3에 밀려 기기도 단종됐고~
어렵게 용산 전자상가에서 찾아보니, 그 조그만한 충전지를 8만원 넘게 부른다.
무슨 8만원씩이나 주고 사냐며 버렸는데~
실수했다;;;
그렇게해서라도 두고 사용했어야 옳았다. ㅠ,.ㅠ
후회가 막심하다.
그립다!!! 나의 CD플레이어~
한창 삐삐가 유행이던 시절~
삐삐를 사달라던 중학생의 나~
엄마는 그건 금방 사라질 물건이라며, 다른 것을 사는 건 어떠내고 하셨고,
난 CD플레이어를 원했고,
엄마는 바로 사주셨다.
CD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내가 체육시간이면 다른 반 내 친구들은 서로 자기에게 CD플레이어와 CD를 맡기기 기다렸다.
그런 추억이 있는 물건인데,,,
버렸다. ㅠ,.ㅠ
집에 CD도 많고, 음악을 좋아해서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사려고 하는데,
단종된 기계라 비싸기도 비싸지만,
일단은 물건이 없다 ㅡㅡ^
그 짧은 시간에 CD플레이어가 박물관에 와 있게 될 줄이얌;;;
좀 놀랍기는 하다.
컴퓨터를 떠나서~
한글 박물관, 디지털 세상의 새이름 _ 코드명 D55C AE00 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전자를 아는 자만이 새 시대에 살아남는다"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은 살아있다" 특별전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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