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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

진도, 진도북놀이 / 진도아리랑 [세방낙조전망대] 2012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한 곳이다.

급치산전망대에서 해안선을 따라이어지는 "시닉드라이브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보면 "세방낙조전망대"를 만나는데~

이 곳에서 진도북놀이 체험도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족이 도착했을 때는 "진도 O중학교 동창회"가 한창이었다.

덕분에 진도 북놀이며, 진도 아리랑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진도북놀이는

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농악에서 북놀이는 판굿의 구정놀이와 모내기 할 때 들노래와 어울리는 모북의 두 경우가 있다.

구정놀이를 할 때는 설쇠놀이, 소구놀이, 설장구놀이가 끝나면 북잡이들이 나와서 북놀이를 한다.

이때의 가락은 대개의 경우 자진몰이(3채), 굿거리(살풀이),

영산다드래기, 벙어리삼채, 자진몰이(3채), 오방진, 휘몰이,

굿거리(살풀이) 등을 치는데 춤사위가 곁들여진다.

북놀이는 지역에 따라 제각기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크게 경상도 북놀이와 전라도 북놀이로 나눌 수 있다.

전라도의 북놀이는 외북치기와 양북치기로 다시 나뉜다.

외북치기는 전라도 지방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북을 어깨에 메고 한손으로 북채를 들고 친다.

이 때문에 원래 박자에 충실하며 웅장한 소리를 낸다.

양북치기는 진도에서만 전승된 것으로,

양손에 북채를 쥐고 장구를 치듯이 두드리기 때문에 잔가락이 많이 사용되며,

멈춤과 이어짐이 빠르고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즉흥적인 북가락과 춤사위가 어우러져 더 흥을 돋우며

다양한 변주를 모색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행률이 명인이었고, 김행률에게 임장수, 박태주, 김성남이 전승하였으나 죽었다.

지금은 김성남으로부터 장성천(), 박관용(), 양태옥(), 곽덕환(),

박병천()이 고법을 전수받아 활약하였으며

기능보유자로는 장성천, 양태옥, 박관용이 지정되었다.

양태옥은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을 창립하여

후진 양성과 북놀이 계승에 힘써 왔다.

박관용은 김성남의 가락과 몸짓 바탕에 여러 가지 즉흥적인 춤사위를 곁들인

세련된 북놀이를 연출하고 있다.

장성천은 1923년 진도군 임회면에서 태어나 20세 때 북놀이 가락과 장구, 아쟁, 판소리 등을 배웠는데,

농악 판굿의 구정놀이인 북놀이 가락에 충실하여

선이 굵고 흥겨운 진도의 전통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1984년 진도북춤놀이보존회를 만들어 전승에 힘썼으나 1992년 작고하여

그 뒤를 김길선이 잇고 있다.

김길선은 24세 때부터 모북과 지신밟기에서 북을 쳤다.



진도 아리랑은,,,

전라남도 진도 지방의 민요.

부요적(婦謠的) 성격이 강한 서정민요이다.

현지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 부른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발생한 노래이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다.

사설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설 내용에 욕·상소리·한탄·익살 등이 응집되어 부인네들의 야성을 거침없이 노출시키고 있으며,

또한 도서 지방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사설의 형식은 2행 1연의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이루어지는 분장체(分章體) 장가(長歌)이다.

가창 방식은 기존 사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설이 창자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덧붙여질 수 있는

선후창 형식의 돌림노래[輪唱]이다.

돌림노래란 여럿이 부를 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메김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맞는소리(맞음소리)를 하는 것으로,

이러한 가창 방식은 집단 노동요의 전형적인 가창 방식과 일치한다.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후렴)

○ 니정 내정은 정태산 같은데

원수년의 탄광 모집이 니정 내정을 띤다.

(후렴)

○ 저 강에 뜬 윤선은 바람심으로 놀고

점방에 유성기는 기계심으로 논다.

(후렴)

○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애기 젖통은 몽실몽실

(후렴)

○ 씨엄씨 잡년아 잠깊이 들어라

문밖에 섰는 낭군 밤이슬 맞는다.

(후렴)

○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

(후렴)

창작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때는 유교적 전통문화와 개화문명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고,

외세의 침탈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사설 중에는 유성기·윤선·자동차·자전거 등의 개화문물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세태가 풍자되어 있다.

한편, 창작자는 진도 출신이며 신청(神廳)에서 작사·작곡했다는 설도 있다.

사설에 대한 기원설화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로,

진도 총각이 경상도 대갓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밀애 끝에 쫓기는 몸이 되어 진도로 도망쳐 정답게 살다가 총각은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와,

진도 총각과 혼약한 한 처녀가 총각이 육지에서 다른 처녀를 데리고 오자 원망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로,

설이향과 소영이 굴재를 오가며 사랑을 하였는데, 어느 날 소영공자가 떠나 버렸다.

슬픔에 찬 설이향은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자 사생결단을 내려 했으나 죽지 못하고,

비수로 머리를 자르고 쌍계사의 중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장단은 세마치 장단이며,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한 선율구조로 장식음·비음(鼻音)의 사용이 많다.

일반적으로 중모리장단으로 부르나 때에 따라서는

느린 박자인 진양조나 중모리보다 약간 빠른 중중모리로 부를 수도 있다.

<진도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 지니고 있는 비탄조와는 달리

<육자배기> 가락에 판소리의 구성진 목청이 어우러진 진도 지방 특유의 정조(情調)를 지니고 있다.

혼자 부를 때에는 유장하고 슬픈 노래가 되어 신세타령과 같은 표출 기능이 두드러지지만,

노래판에서 여럿이 부를 때에는 빠르고 흥겨운 노래로 신명을 고양시키고 일체감을 조성·강화시킨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세방낙조전망대,,, 지도에서 [11번]

진도, 진도북놀이 [세방낙조전망대] 2012.04.14 (첫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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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