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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그 곳을 거닐다

[창덕궁] 희정당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인정전이 창덕군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총석정절경도,금강산 만물초승경도의 벽화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이 생겼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설비되었다.

이는 마차나 자동차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채택된 서양식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재건된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천장에 샹그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보물 제 815호이다.





유리로 된 창문과 문,,,


모든 것이 서양식이다.

건물은 동양식인데, 안쪽은 서양식~

묘한 조화를 이룬다.



 

창덕궁 [희정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