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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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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설날, 창덕궁을 거닐다 # 인정전 # 선정전 2017 설날, 창덕궁을 거닐다. 창덕궁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물,,,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은 ‘높다란 저 법전은 창덕의 큰 터전이라 … 다스림은 무엇인가 인(仁)으로써 행정하네[嵬彼法殿 昌德丕基 … 何以出治 發政以仁]’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어진 정치’를 펼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이 건립되던 해인 1405년(태종 5)에 지어졌다. 조선전기부터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등 정전으로 주요 기능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정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정전은 창덕궁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물로, 왕의 즉위식과 신하들의 하례 및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이 치러졌다.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몇 일 전, 어느 문화재 홈페이지..
[창덕궁] 봄꽃 향기 가득한 고궁,,, 대조전 + 인정전 + 경훈각 + 진선문 + 돈화문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3 햇살 좋은 봄날이다. 이젠 약간의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따사롭다. 모자, 썬글라스, 양산이 없어 여름도 오기 전에 까만콩이 될까,,, 걱정은 되지만~ 맑고 선명한 사진이 담길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ㅡ^;; 올 봄꽃을 만나는 시기는 정말 잘 정한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절정, 만개"다. 이렇게 날짜 정확히 맞추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올해는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ㅡ^;; 앵두꽃 활짝피고,,, 후미진 곳의 "금낭화"도 수줍게 피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수락간" 그 시절 이 곳에서는 맛있는 향기가 진동했을 것이다.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 공간이었던,,, 대조전. 비극의 역사가 담겨있는 왕비의 침전이다. 마지막 왕후의 침대,,, 창경궁 쪽에서 건너오다보니~ 창덕궁을 반..
[창덕궁] 창덕궁의 가을 - 인정전 + 선정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 ----------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인정전 일원"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겉으론 복층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통층이며, 안쪽 바닥은 원례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 있다. 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과 함께 1908년 서양식으로 개조되었다. 후원쪽으로 보이는 단풍이 장관이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한가로워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단풍사진 찍으려는 목적이 더 큰 외출인지라~ 진행은 빠름~ 빠름~ 빠름~ 임금님의 집무실로 쓰인 곳,,, "선정전 일원"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이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
[창덕궁] 인정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 인정전은,,,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태종 이방원이거처할이궁(離宮)으로창덕궁을 건립하면서 1405년에 완공되었다. 태종 때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으나 1418년에 규모가 큰 건물로 고쳐지었다. 인정전(仁政殿)은 인자한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창덕궁의 정전(政殿)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재로 전소되었고 선조 때 복구공사가 시작되어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하던 1607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이 후 인정전은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행하였고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창덕궁은 여러차례 화재로 시달렸는데 1803년 선정전에서 불이나 인정전까지 전소되고 말았다. 이듬해1804년(순조 4) 다시건립되었다. 인정전의 앞 마당에는 박석(薄石)을..
[창덕궁] 인정문 + 인정전 + 숙정문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2 인정문은,,, 이궁(離宮)인 창덕궁 정전(正殿)이면서 300년이나 조선의 정사를 다루어 온 인정전의 정문이다. 1405년 태종(太宗)이 창덕궁을 지으면서 건립한 문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가 광해군때 복원되었다. 역사적으로는 1494년 연산군이 인정문을 지나 왕위에 올랐고, 이후1649년(인조 27) 효종, 1659년(효종 10) 현종, 1724년(경종 4) 영조, 1800년 순조, 1849년 철종, 1863년 고종이인정문을 지나 인정전에서 임금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의 다포계(多包系) 건물, 5량가구(五樑架構)의 팔작지붕이다. 삼문 중 넓은 가운데 칸은 임금이 출입하였고 동쪽은 문관, 서쪽은 무관이 출입했다. 길게 다듬어진장대석으로 기간을 쌓았고 가운데 돌계단..